[이규용 한국환경한림원 회장] 환경권의 미래를 위한 전제조건

대한민국 지속가능발전의 최후 보루 ‘환경권’
김한결 기자
eco@ecomedia.co.kr | 2020-11-06 17: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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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권 40주년 기념 포럼·국제학술대회’가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 블룸 B홀에서 열렸다. 본 행사는 환경권이 대한민국 헌법에 규정된 지 40주년을 맞아 환경권 실현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장으로써, ‘환경권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한국환경법학회와 함께했다. 이날 전문가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한 이규용 한국환경한림원장의 기조연설문을 일부 발췌하여 싣는다.

▲ 이규용 한국환경한림원 회장

사회적 기본권인 ‘환경권’
대한민국은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룩한 거의 유일한 나라로서, 세계적인 모범사례이다. OECD도 환경성과평가에서 “STRIKING PROGRESS(놀라운 진전)”이라는 찬사를 표한 바 있으며, 분야별 수질관리, 폐기물관리, 산림복원 등에서도 세계적인 성공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이는 환경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과 정부의 효율적인 정책추진, 기업의 적극적인 협력의 결과이지만, 그 근저에는 ‘1980년 개정헌법상 최초로 명문화된 환경권 규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환경권은 국민 개개인에게 인정된 실체적 권리이다. 헌법 제33조에는 “모든 국민은 깨끗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1980년 10월 당시 출범한 권위주의적 정부가 만든 대통령간선제를 중심으로 하는 제5공화국 헌법에 처음 명문화되었다지만 초기에는 상당 기간 장식적 성격의 조항이었다.  

 

그러나 압축성장과정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심각한 공해문제는 국민들로 하여금 성장일변도의 경제정책 수정과 더불어 환경문제 해결을 통한 환경권의 실질적 보장도 강력히 요구되었다. 이에 따라 헌법상 환경권 조항도 힘을 얻기 시작하면서 80년대 중 후반부터 본격적인 환경행정의 추진 기반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환경권은 많은 기본권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그 보장이 불가피한 일종의 ‘기본권의 전제조건의 보호’ 의미를 가지는 ‘종합적 기본권’의 성격도 있다는 것이 다수 학설과 판례의 입장인 바 헌법재판소 역시 환경권의 법적 성격에 관하여 종합적 기본권의 성격을 가진다고 판시하였다(2006헌마711 결정).  

 

또한 우리 학설과 판례는 헌법 제35조 제2항의 “환경권의 내용과 행사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는 규정에 의거 추상적 권리설의 입장이다. 그럼에도 그 실체적 권리성은 명백하므로 이를 부인하는 입법은 입법재량의 일탈·남용이 된다. 헌법재판소도 환경권의 구체적인 내용은 입법부의 결정에 맡겨져 있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본질적 내용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판시한 바 있다(2006헌마711 결정). 

 

우리 헌법상 환경권은 국가에 직접 적용되어 모든 국가권력 및 입법·행정·사법권을 구속하는 효력이 있다. 비록 환경권이 입법에 의한 구체화가 전제되는 추상적 권리이기는 하나, 엄연한 실체적 권리이므로 국가권력은 그 본질적 부분을 침해할 수 없다. 아울러 이 부분에 관한 국가권력은 구체적 의무를 지게 된다.

환경권의 발아기, 환경권 명문화
그러므로 이제는 헌법상 환경권조항하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고, 실질적인 효과를 무엇이었는지 평가해볼 시점이 되었다.  

 

80년대 중반부터 압축성장의 부작용이 본격화되어 수도권의 분진·납 등 대기오염 심화, 산성비 문제, 수돗물 불신 표면화, 울산·온산의 대기오염 및 괴질 등의 문제가 연이어 발생하자 공해방지 차원의 정책과 환경단속이 본격화되었다.

 

당시 특기할 것이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의 주최다. 두 국제적 스포츠행사의 개최를 계기로 환경문제에 대한 정부의 규제정책이 시작되었으며, 한편으론 이 시기에는 치열했던 민주화 운동의 한 갈래로서 환경권 보장을 위한 실질적 투쟁의 형태로 NGO의 환경운동이 강력하게 전개된 것도 환경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한 기초확립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때 추진된 80년대 중반의 대표적 환경정책으로 오염물질 배출허용기준설정, 고체연료 사용금지, 청정연료 의무화, 무연휘발유 자동차 의무화 등이 대표적이다. 이 시기는 환경권의 발아기라고 할 수 있다.

환경권의 확장기, 환경권 보장정책 추진
1990년 환경청이 환경처로 내각의 일원으로 승격되면서 환경권 보장을 위한 본격적인 정책을 추진하게 되었다. 여기에 90년대 초반 낙동강 페놀오염 사고 등 2차례의 대형 물 사고를 겪으면서 하수처리와 고도정수처리에 엄청난 국가 예산이 투입되었고, 종량제 시행과 자원 재활용의 본격화, 천연가스 버스 도입. 환경영향평가 강화, 국립생물자원관 설치를 비롯한 자연환경관리 강화 등 다양한 환경 분야에서 국민의 환경권이 강조되는 등 실질적 환경의 질 개선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가 환경권 보장을 위한 실질적 환경정책의 성장기로 볼 수 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물, 대기, 폐기물, 자연환경 등 분야별 정책추진 성과가 가시화되었고, 2006년 OECD로부터 “대한민국은 환경정책의 놀라운 진전을 성취하였다”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후 구미 불산폭발사고 등 연이은 화학물질 사고와 엄청난 피해를 불러온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터지면서 환경권의 본질인 “국민의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가 더욱 크게 부각되었으며, 이에 따른 수용체 중심의 환경보건문제가 최우선적인 정책 화두로 등장하였다. 이후 화학물질 관리와 환경보건 분야에도 점차 정책 체계와 내용 모두 상당한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급증, 미세플라스틱 문제, 기후변화 피해의 본격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한 비대면 시대의 출현에 따른 일회용품과 포장폐기물의 엄청난 급증 등 이전과는 다른 양상의 환경문제가 발생하면서 본질적으로 모든 경제주체의 고통분담을 전제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문제해결 방식이 요구되고 있다.
이 시기를 포함한 가까운 미래를 환경권 보장의 업그레이드가 요구되는 환경권의 확장기이다.

환경권 보장을 위한 4가지 대원칙
그렇다면 이러한 환경권의 확장기를 맞아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우선, 환경권을 더욱 보장하기 위한 전제로서 국가와 개인 및 기업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함께 확인하고 추구해야 할 원칙 내지는 가치에 대한 공동인식 내지는 사회적 합의를 더욱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생명존중, 지속가능한 발전, 모든 경제주체의 고통분담 그리고 확고한 법집행의 4가지 대원칙을 강조한다.  

 

첫 번째 가치인 생명존중은 비단 환경권 조항뿐 아니라 모든 인간 기본권의 전제가 되는 가치이며, 환경권과 관련하여 인간뿐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공동체를 포괄하는 특별하고 절대적인 가치여야 한다. 

 

두 번째 가치인 지속가능한 발전은 UN에서 정한 문자 그대로 미래세대가 누릴 삶의 질을 저해하지 않는 현세대의 성장으로서 우리 후손들에 대한 현세대의 배려를 말하며 실천규범으로서는 욕망의 절제이다. 

 

세 번째 가치는 모든 경제주체의 고통분담이다. 모든 경제주체는 환경에 관한한 빠짐없이 가해자이고 피해자이다. 다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어서 각 주체가 작게는 플라스틱쓰레기 문제부터 크게는 기후변화 대처를 비롯한 모든 환경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네 번째 확고한 법집행이다. 환경을 지키는 일뿐만 아니라 환경비용의 내재화를 통한 공정한 시장질서의 확립과 환경법을 잘 지키는 기업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도 너무나 중요한 원칙이다. 그만큼 환경 분야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의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정부의 규제가 매우 강하게 요구되는 대표적인 분야이다.  

 

다만, 환경권 명문화 초기에는 환경보전법과 폐기물관리법 2법 체제였던 환경법도 지난 40년 동안 엄청나게 진화하여 최근 공식적으로 70여 개의 법률이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수많은 법률들이 항상 실효적으로 작동하여 추구하고 있는 환경권의 실질적 보장 목표를 충분히 달성하고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 우리의 환경권은 현실적으로 법률에 의해서만 실현되는 추상적 권리로서 작금의 70여 개 법률은 지난 40년간의 환경권 보장을 위한 노력의 다대한 성과라고 볼 수 있으나 결국은 정부의 실효적 집행 의지에 그 성과가 좌우되고 있음은 그동안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생명존중, 지속가능발전, 모든 경제주체의 고통분담 그리고 확고한 법집행이라는 4대 원칙에 관한 국민적 공동인식이 확고해지고 이것이 의식 속에서가 아닌 실제 행동규범으로서 모든 경제주체의 움직임에 자연스레 우러나는 때가 될 때 비로소 우리의 환경권뿐만 아니라 우리와 미래세대가 모두 인간답게 살 권리를 확고하게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최후의 보루, 헌법상의 환경권 조항
환경부 소속의 행정가로서 오랫동안 일해오면서 상당 기간을 환경권이 구체적 권리인가, 종합적 기본권인가, 사회권인가에 대한 논쟁은 별 실익이 없다고 생각해 왔었다. 국민과 기업 등 경제주체가 여타의 가치들을 양보하면서라도 환경을 더 중시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공감대만 형성할 수 있다면 문제될 게 무엇인가, 또 이를 위해 자신도 고통분담에 동참할 수 있고, 입법·행정 등 국가기관들을 잘 설득하여 개별 법률로써 환경권을 보다 잘 구체화하고, 우선적으로 투자하거나 생활문화도 친환경적으로 바꾸어 갈 수 있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꿈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작게는 개별 환경법 제·개정을 둘러싼 전투들, 그리고 크게는 개발과 보전을 둘러싼 크고 작은 대립과 갈등이 결국은 헌법상의 경제적 기본권 등과 환경권 사이의 가치 충돌로 귀결되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기댈 최후의 보루는 바로 헌법상의 환경권 조항이다. 헌법상 환경권조항 강화의 중요성은 앞으로 전개될 헌법개정 국면에서 우리 환경인 모두 전공을 불문하고 정신 바짝 차리고 이러한 노력에 동참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번 코로나19 와중에 전 국민의 예외 없는 철저한 마스크 쓰기는 자신의 건강은 물론이고, 혹여 발생할지도 모를 타인에 대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배려 차원으로 정말 불편한 것을 참고 참여하는 것이다. 이는 앞서 서술한 생명존중 등 환경권 4대 원칙을 포괄하는 실천적 가치인 배려와 사랑을 앞장서서 실천하는 것이며, 우리 환경의 미래와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희망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이규용

프로필ㅣ 한국환경한림원 회장, 전 환경부장관, 김앤장법률사무소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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